2009년 10월 9일 금요일

한글날 생각하는 이중언어 교육

한글날 생각하는 이중언어 교육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들은 한글날을 한국에서 맞이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10월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신문에서는 우리말이 훼손되어가고 것에 대한 염려와 정부의 소극적인 한글 정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한글을 문어로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우선 본인의 모국어는 한국어이지만 아이들은 영어가 모국어이다. 즉 부모와 아이의 소통은 아이가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서 익히거나 부모가 영어를 배워야만 가능하기에 한글과 우리말로 비롯되는 문제들이 훨씬 현실적일 수 있다.

 

물론 바람직한 것은 아이가 우리글과 우리말을 잘 배우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록 미국에서 살더라도 본인의 외모에 걸맞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두 가지 말을 다 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차 사회에서 보다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이중 언어 교육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리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게 하고 주말에는 한글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또한 방학 때면 아이를 한국 친척집에 보냈다는 이웃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온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막 이민 온 부모들 중에서는 미국사회에 보다 빨리 적응시켜야 하겠다는 조급한 마음에서 아이에게 집에서조차 한국어를 사용 못하게 하고 부모가 엉터리 영어로 아이들을 나무라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영어를 익히는 것이 참으로 빠르다. 초등학교 때 이곳에 온 아이들은 넉넉잡아 일 년만 지나도 적어도 회화에서만은 우리가 대학교까지 배웠던 영어보다 훨씬 잘 한다. 중학교 때 온 아이들은 한 이 년 정도, 그리고 고등학교 때 온 친구들은 한 삼년정도면 학교와 일상생활에서 영어가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는 것 같다.

 

거꾸로 말하면 아이들이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속도는 영어를 습득하는 것과는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두 가지 말을 쓰는데서 오는 언어적 충돌현상으로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 쓰기도하고 우리말을 혀를 굴리듯 발음하기도 한다. 나아가서 생각과 나이에 맞는 우리말 표현은 찾지 못해 어린 아이처럼 귀여운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아이들에게 나타날 때 부모들은 아이들이 일상에서 보다 우리말을 더 많이 접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텔레비전 방송, 최신노래와 만화 등 아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틈틈이 그들의 놀이 문화 속에 섞어놓고 자연스럽게 한국의 또래문화에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언어란 그 언어가 발생한 지역의 문화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 못하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일이 없다. 아무리 미국에서 명문대를 나왔다할지라도 미국에서 미국인들만큼 성공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동료 미국인과 같은 실력을 갖추고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문화에도 익숙해져 있다면 하늘에서 별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높다.

 

가끔 한인 타운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교포 1.5세 내지 2세 전문직 직업 종사자들을 본다. 과연 그들이 학업을 마치고 한인 타운으로 돌아온 이유가 단지 부모의 나라를 사랑해서 그리고 그들을 낳아준 한국에 보답하고자 사무실을 차린 것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끝hearstone]

 

* 위키백과>한글(한국어)

* Wikipedia>Hangul(English)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은지 사건과 이혜경의 단편『그리고, 축제』

은지 사건과 이혜경의 단편『그리고, 축제』

2009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소위 나영이 사건으로 범인 조두순에 대한 증오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오늘 다음 아고라에는 “성범죄없는나라님”, 초등학교 선생님이 지체 장애인인 자신의 제자 은지를 성폭행으로부터 구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또한 다음의 네티즌 청원에는 은지를 구하자는 서명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성범죄없는나라님께서는 백방으로 은지를 구하고자 최선을 다 했으나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이야기는 추적60분에서 2008년6월18일에서 “은지를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도덕불감증에 걸려있는가를 사실적으로 말해준다.

 

대한민국에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없는가. 사랑과 자비를 근간으로 삼는 종교가 없는가. 국민의 귀와 목소리인 방송국과 신문이 없는가. 대체 백주대낮에 일어나고 있는 가장 파렴치한 반인륜적 범죄들을 국가는 왜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도 권력의 문제도 아니지 않는가!


소설가 이혜경씨는 『그리고, 축제』에서 한 여성이 어릴 적 성폭행으로 인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고 성인이 되고나서도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얘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실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아동성폭력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가 우리 공동체에 만연해져 있음을 간접적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하겠다.

 

주인공, 피해자는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가해자를 우연히 만난다. 그 후 그녀는 결혼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게 되고 그 정신적 충격은 심장병으로 까지 전위된다.

 

남편의 따뜻한 이해와 사랑을 그녀는 결국 그녀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작가는 피해자의 심리를 무서움에 떨고 있는 새장 속에 웅크린 작은 새에 비유한다. 합리적 논리적 사고를 잃어버린 그저 알 수 없는 무서움에 떨고 있는 작은 새.



아동성범죄의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지만 가해자는 인생에 있어 하나의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혜경씨는 아동성범죄 피해자의 아픔을 세계 분쟁 지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자살폭탄 테러와 그 유족들의 고통에 비유하고 있다.


hearstone

2009년 10월 4일 일요일

조두순 사건과 영화 “밀양”

조두순 사건과 영화 “밀양”

밀양에서 주인공 신애(전도연씨)는 아들이 유괴 살해를 당한 후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일 만큼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그 고통을 잠시나마 기독교라는 종교의 힘을 빌려 잊고자 노력을 한다. 그러나 범인을 면회 가서 그가 신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았다는 당당함과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살인자의 말과 행동에 분노하게 된다.


 

조두순 사건에서 범인의 잔혹성은 이제까지 그 어떤 영화나 소설에서도 접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의 범행동기가 가족이나 친구의 원수를 갚는 복수였다면 그래도 그의 범행에 대해서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을까하는 의문을 한번쯤은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범인은 단지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겨우 9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그런 짓을 했다니 이는 일본군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한 짓보다 더 잔인한 범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범인은 당당하다. 반성의 기미는커녕 오히려 취조하는 형사들을 협박까지 했다고 하니 이해 불가능이다. 더욱이 그 가족들은 항소까지 했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와 그 가족들은 아마 정신병자들이 아니면 무슨 대단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 모두는 밀양의 신애와 같은 심정이다. 범행의 잔혹함에 비해 어처구니없는 형량과 범인의 당당함에 치를 떨고 삶의 부조리에 억울해 하고 있다.

 

밀양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자른다. 잘린 머리카락들은 햇빛이 내려쬐는 지저분한 마당 가장자리에서 날린다.


 

모두들 말한다. 그녀의 슬픔은 비밀스런 햇볕 아래에서 마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듯 하나 둘 없어지고 있다고. 혹은 슬픔은 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잘라버리고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해피엔딩에 감동들 한다.

 

그러나 인간의 뼛속까지 사무친 고통과 슬픔은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 도 있다.

 


종찬(송강호씨)이 들고 있던 거울은 신애의 영정으로, 그리고 그녀의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그녀의 보잘것없고 억울한 삶의 종말로 비친 것은 나뿐이었는지 모르겠다.


hearstone

 


[독후감]『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 김연수
2009년 이상문학상 (제33회) 대상 수상작

작가 김연수씨는 책제목이 주는 산뜻한 느낌과는 달리 인간 존재에 있어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무거운 주제를 시종일관 비유로서 묘사하고 있다. 구성은 모두 다섯 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장은 시간의 흐름에 따르고 있다. 구조는 전체적으로 네가지-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 산책이야기,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 고통에 대한 수사법-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종갓집 큰할아버지 제사상에 오르는 산적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주인공의 고통에 대한 의식의 흐름이라는 꼬챙이에 맛깔스러운 다섯가지 산책 이야기가 정성스럽게 꽂혀져 있다. 갖은 양념이 진하게 베인 다양한 언어들로 고통을 비유하고 더욱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깨소금처럼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가 전체에 흩뿌려져 있다. 이 소설은 작가가 고통을 수사(修辭)하는 말들이 읽는 이들에게 추상적 고통이 어떤 것인가 구체적으로 상상할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따라서 작가의 고통에 대한 수사법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서로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녀와 헤어졌고 그녀가 죽어버린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이후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든 경험이 있다. 주인공은 소설이 시작되면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코끼리가 가슴을 짓누르려고 하는 환각 증세에 잠을 못 이룬다. 그는 그런 코끼리를 잊기 위해 무엇인가 열중하고 싶어 정말 읽으면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재미없는 책을 읽을 요령으로 서가에서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을 골라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그 책에서 말한 대로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무엇이든지 간에 짧은 시간에 척척 해치워버릴 수 있도록 걱정거리와 함께 산책을 할 친구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즉 산책의 목적은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 일들을 짧은 시간에 해결하면 불면의 고통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지네가 열 개의 다리를 잃고도 다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도망가는 것처럼, 베짱이가 다른 포식자에게 자신의 몸이 씹히는 와중에도 열심히 먹는 것처럼, 교미가 끝난 수컷 사마귀가 암컷에게 머리가 먹힌 뒤에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사랑을 하는 것처럼" 그도 그렇게 무엇인가에 열중하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날은 혼자 산책을 시도해보지만 불안감과 코끼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의 첫 번째 산책은 여동생과 함께였다. 그녀와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보지만 여전히 그의 고통의 상징인 코끼리는 산책하는 동안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고통이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은 대상화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마치 탁구공, 야구공, 핸드볼공, 축구공, 농구공, 럭비공, 애드벌룬, 지구와 같은 것처럼 생각하고 타인에게 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날 밤 그는 비교적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두 번째 산책 파트너는 금융감독원에 다니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는 산책하면서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고통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급습해 올지 모르는 공포감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각자의 고통은 타인에게는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설명을 해도 본인이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마치 주인공에게는 코끼리의 모습이지만 타인이 보는 그의 고통은 백혈구, 빛보다 빠른 입자로 아직 증명이 되지 않은 타키온과 같을 수 있고, 애널리스트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작금의 주식시장과도 같을 수도 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취해 친구의 품에서 사랑했던 그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녀, 그녀가 짊어지고 있던 고통을 결코 알 수 없었다는 자각에 그의 코끼리가 그를 마구 짓밟고 있는 것도 잊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러기처럼 통곡을 한다.

세 번째 그는 그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건축사와 함께 산책을 한다. 어린 시절같이 탁구를 치던 것을 회상하면서 친구의 스핀 걸린 공이 어디로 튈지 몰랐던 것처럼 자신의 코끼리가 가슴에 발을 얹은 채 언제 힘을 세게 줄지 모를 예측 불가능한 공포와 연결 짓는다. 뒤늦게나마 사랑했던 그녀에게도 뼈아픈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고통과 함께 그녀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네 번째 산책의 동행자는 그가 산책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책,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에 나오는 Y씨였다. 그녀는 폐암 선고를 받았으나 고비를 넘기고 장기 생존을 한 사람으로 오십대였다. 그녀는 암환자를 위한 고궁 산책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녀가 자신보다는 훨씬 심한 고통을 지녔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암 선고를 받은 후 줄곧 모든 것들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었고 그에 대한 답은 결국 혼자서 구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홀로 산책을 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걷기 시작하지만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는 생각에 이른다.


고궁 밖을 나왔을 때 거리는 소란스럽고 옛 애인과 꼭 붙어 다니던 그 길에는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가로막고 있었다. 주인공이 본 것은 사람들의 함성, 검은색 진압복, 살수차, 검은색 투구에서 2미터 정도 위쪽으로 지나가는 바람, 예축불가능한 극도 불안에서 오는 고통 그리고 경찰이 돌아가라고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니 "또한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그것을" 이라고 끝을 맺는다.

주인공은 Y씨가 고통을 극복해 낸 것처럼 산책을 하는 동안 나름대로 고통으로 상징되는 코끼리로 부터 벗어나고 있다. 비록 고통이라는 것은 객체화될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타인의 고통을 조금씩 생각하고 이해해 나가는 산책이라는 과정 속에서 본인의 고통을 조금씩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배워 나간다.


그는 소설 맨 마지막에서 그 자신과 그를 괴롭혀왔던 고통들과 함께 타인의 고통,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형상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예전 같으면 그곳에는 그의 고통의 상징이었던 코끼리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hearstone




[독후감]『사랑을 믿다』 -권여선

[독후감]『사랑을 믿다』 -권여선

2008 제32회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뒤 자신이 스스로 주인공이 된 듯 잔잔한 상념들이 밀려왔다. 주인공처럼 나 역시 사랑이라는 단어에 격렬해지기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실연의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 때마다 난 어떻게 극복해 왔던가 하는 망상을 담배연기와 함께 피웠다.


 

이 소설은 마치 텔레비전에서 방영될 법한 미니시리즈와 같은 느낌이다. 첫 장면은 주인공이 허름한 술집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서서히 화면이 뿌여지면서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다시 같은 장소에서 시작과 같은 포즈로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그의 생각과 느낌이다. 그가 앉아있는 술집은 그와 그의 회상 속에 나오는 실연한 이들의 절망과 상념이 담겨져 있는 이야기 주머니와 같은 곳이다.


주인공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녀를 다시 만나 것은 삼년만의 일이다. 당시 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녀와 만나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 그녀를 만난 것은 그가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람이 그를 떠나버린 직후였다. 그녀를 만나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삼년 전에 실연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연히 맞아 떨어지는 시점에 놀라면서 혹시 상대가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그녀로부터 그녀를 처음 이 술집에 데려온 친구와 그녀 자신의 실연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의 친구는 실연에 대해서 참으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다시 결합하고 싶은 욕망과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감에 그녀 앞에서 그저 눈물을 쏟는 것 이외에는 아무 방도가 없었다. 그녀의 실연은 그 친구의 실연보다 일 년이 앞선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그녀 곁을 떠났는지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이 보는 삼년 전의 그녀에 비해 현재의 그녀는 너무나 쿨하고 무미건조하여 낯설게 까지 보였다. 그는 이런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의 실연의 아픔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해 볼 뿐이었다. 이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 없는 듯한 옷차림, 행동과 말투는 그로 하여금 혹시 그녀를 실연시킨 자가 자신이었다면 그녀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했었는가 하는 죄책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그녀가 실연을 극복하게 된 것은 지극히 보잘것없는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거의 찾아가지 않던 고모님 댁에 선물로 무거운 단지 하나를 갖다 주게 되었다. 그 집은 허름한 옥탑방이 있는 삼층 건물. 삼층이었고 옥상에는 철학관이 있었다. 고모 집을 들어서자 주인없는 집에 고모 집을 철학관이라고 착각한 여인 세 명이 점을 보기 위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희귀병을 앓는 친지를 둔 여자, 손자가 유괴된 여자 그리고 남편이 바람난 사연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보잘 것 없는 일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고모부가 귀가해 철학관은 사층에 있다고 하자 모두들 당황하여 밖으로 나온다. 그녀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고모부를 뒤로하고 그들과 함께 나온다. 무거운 선물단지는 놓아 둔 채로. 그리고 "그녀이게 만들었던 본성의 작은 칩도 함께 놓아 둔 채로". 


이후 고모부가 자살했고 일 년 후, 바로 일주일 전에 고모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모 집에서 있었던 해프닝은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실연보다 결코 작지 않는 아픔을 저마다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일상의 보잘 것 없는 일들에 열중하며 살아가는 낯선 그들의 무덤덤함에 그녀는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세상에 죽어도 못하는 게 어딨고 죽어도 꼭 해야 하는 게 어딨나요.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콕 집히는 거예요. ... 살다보면 이건 죽어도 못하겠다. 죽어도 이건 해야겠다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죽어도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주인공은 그녀가 해준 그녀의 실연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그녀의 실연의 아픔을 "겉으로는 살 맞는 짐승처럼 꿈틀댔지만, 그 안쪽에서는 표면장력으로 팽팽한 절망의 비커를 붙들고 쓰디쓴 고통을 한 방울도 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일상에 열중한다는 것은 "싱거운 맥주 맛 속에 뾰족한 심처럼 독한 안동소주의 향이 박혀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 술집에 앉아 있는 것은 얼마 전에 실연당한 상처를 달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어느새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그리움과 같은 때늦은 실연과 오지 않을 그녀를 기다리는 야릇한 사랑을 그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놓쳐버린 스물아홉의 그녀로 인해 뒤늦은 실연을 앓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늦어 격렬하지는 않겠지만 , 격렬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 입술을 피나게 씹어대진 않겠지만, 희미해진 사진 속 윤곽을 더듬듯 손끝이 닳도록 무언가의 테두리를 하염없이 더듬어나갈 만짐의 세월이 시작되리라는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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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기대어 앉은 오후』-이신조

소설을 읽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서점에 들렀었다. 무슨 상 받았다는 소설만 진열되어 있는 서가를 기웃거리다 이 책을 집어드는 순간 나는 피시시 웃고 말았다. 그건 작가의 이름이 살아오면서 별로 끈끈한 인연이 없는 두 인물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남파간첩 김신조, 다른 한 사람은 비슷한 이름의 어느 선배의 부인이었다. 어느 날 초대를 받아 식구들과 함께 그 선배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일인당 밥 한 그릇과 된장국 한 그릇 그리고 김치만이 나왔다. 그런데 그 국이 색깔만 된장 색이었지 맛은 맹물과 마찬가지였었다. 미안해 할까봐 다부지게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뚝딱했었다. 작가의 신상과 차례를 살펴 보려고 책 표지를 열자 아주 세련되고 시쳇말로 쿨한 젊은 여인이 작가로 소개되어 있었다. 음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그 여인의 생각을 훔쳐보고 싶다는 묘한 충동으로 책값을 지불했다. 한 석 달이 지났을까. 몇 일전 책장속에서 낯선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이신조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또 다시 김신조와 그 선배 부인의 된장국을 떠올리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후 난 다시금 차례를 살펴보아야 했다. 읽는 중 두 등장 인물의 삶과 상념들을 혼동하여 분간하지 않은 채 무심코 읽었던 것이었다. 차례와 그 내용을 매치시켜보니 윤자라는 한 중년 부인과 은해라는 젊은 여인의 이야기가 거의 쳅터별로 번갈아 나오고 있었다. 윤자는 결혼하여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지만 딸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후 살아가면서 많이 힘들어 하는 여인이다. 은해는 어릴 적의 불행한 가정 환경과 아픈 추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젊은 여자로 통신회사에 근무하면서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의 녹음을 파트타임으로 한다. 이 둘이 처음 대면하는 곳은 어느 큰 대형 백화점 안에 있는 수영장의 초급 수영반이다. 그 뒤로 백화점 등에서 조우하게 된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윤자의 삶이다. 평범한 가정 주부로 폐경기에 접어 든 그녀는 그녀의 딸이 부둣가에서 낯선 사내의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 윤자의 딸은 어느 유부남을 진심으로 사랑했었고 그와 함께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다 비행기 사고로 죽게된다. 그녀의 딸이 죽은 후 그녀는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보낸다. 또한 가족들에 대해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어떤 역할에 대한 의욕도 상실해 있다. 남편과 아들이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름지고 짠 음식을 만들며 그들이 먹든 안 먹든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귀가시간에 대해서도 항상 무덤덤하다. 약간의 도벽이 있으며 헬스클럽에서 수영을 등록하고 은해를 만나게 된다.


둘째 은해에 관한 이야기다. 은해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가씨이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방 윗목에서 밤새도록 조개를 깔 때 들리던 규칙적인 칼질 소리, 고무물통에서 그녀를 목욕시킬 때 등짝을 때리며 “이 더러운 것” 이라는 어머니의 외마디가 성인이 되어서도 귓전에 맴돈다. 외

양선원이었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올 때면 항시 가죽장갑을 끼고 그녀를 안아주곤 했었다. 중풍과 팔 골절로 몸져눕게 된 아버지를 문안하고 그녀는 그 낡은 가죽장갑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그 장갑으로 자신의 처녀막을 찢는다. 한편 그녀는 포르노 비디오 녹음을 파트타임으로 하면서 그녀는 섹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한 신선한 호기심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수영강사가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것을 마치 삼류 포르노 스토리와 같다고 생각하며 그 강사의 다음 행동을 미리 읽어내곤 한다. 드디어 모텔에서 그와 섹스를 하게 되지만 그녀는 어떤 교성도 내지 않으려고 참는다. 수영강사는 그런 그녀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티브 체널을 돌리다 우연히 은해의 목소리가 더빙된 포르노가 방영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볼륨을 크게 틀어 놓고 그녀를 강간한다.


셋째 윤자와 은해의 만남이다. 윤자와 은해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수영장에 등록하기 전까지는 서로 모르고 지냈다. 이들은 시간에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몇 마디 더 주고 받는 관계로 발전해 간다. 그들은 백화점이나 기타 장소에서 서로를 우연히 발견하면 미행하면서 지켜보곤 한다. 윤자는 은해가 수영강사와 만나는 걸 몇 번 목격하게 되고 은해는 윤자를 백화점에서 발견하면 그녀의 도벽을 지켜보기 위해서인지 미행하곤 한다.  사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진 않지만 윤자는 은해를 통해서 죽은 그녀의 딸을 연상하곤 한다. 은해는 모텔에서의 수영강사와의 사건이 있은 후 윤자를 백화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미행한다. 윤자가 수영장에 들어가고 자신도 따라 들어갔다가 윤자가 물속에서 우는 것을 목격한다. 은해는 물속에서 갑자기 하혈을 하게 되고 윤자가 그녀를 데리고 나와 씻겨준다. 벤치에 앉아 윤자는 은해에게 줄려고 늘 가지고 다니던 일전에 은해가 백화점에서 골라준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두 개를 건넨다.


우리는 무수히 지나치는 바쁜 낯선 사람들을 외모와 옷과 자동차 등으로 그 사람의 삶을 가늠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공상과도 같은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저마다 과거의 상처를 감싸쥐고 사는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다. 작가는 백화점이나 대형할인 매장을 활보하는 사람들 각자의 삶의 고독성을 잔잔한 필체와 관용화되지 않은 은유로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은해가 수영강사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은 인간 내면의 고독과 외면의 가식이 절정을 이룬다. 또한 윤자는 은해의 하혈을 씻겨 줄 때 죽은 딸의 첫 생리 때 해주고 싶었던 모성애를 재발견하는 그리고 은해는 어릴 적 고무물통속에서의 어머니에 대한 공포를 씻겨내는 느낌을 받았었것이다.  제목에서의 기댄다는 것은 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댄다는 것은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고독이라는 상처를 서로 햟아주는 행위일 것이다. 비록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관계가 아니더라 할지라도 서로를 감싸주는 따뜻함으로 바라봐 주기만하더라도 그나마 삶이 그렇게 무미건조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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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가 한국인에게 쉬운 이유 네가지

이 글은 2008/01/07에 저의 다른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다음 베스트뷰에 올랐던 글이라 아까워서 다시 올려 놓습니다. ^^


일본어는 한국인이 배우기 가장 쉬운 외국어 중 하나이입니다. 그 이유로는 우리말 발음의 우수성, 문장의 어순이 같은 것, 문법이 비슷한 것, 그리고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말의 발음은 기본 모음만 10개나 되는 그리고 복합모음까지 합치면 거의 말로 표현 못할 소리가 없을 정도의 세계 최고의 우수성을 자랑합니다. 일본어는 5개의 기본 모음과 3개의 반모음만 가진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단어의 발음은 자음,모음,자음,모음의 순으로 발음하기에 아주 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도유럽 언어와는 달리 단어 자체에 어미변화가 심하지 않으며 조사 등 기타 접미사를 우리말처럼 붙여서 변화시키기에 음절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인은 대부분의 일본어를 쉽고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으며 또한 쉽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순이 같다는 것은 대화중에 머리속에서 다음 단어나 문장을 생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와는 달리 일본어는 쉽게 회화가 가능합니다. 미국에서 영어 연수를 1년정도 하면서 영어 말문이 트이기 위해서는 정말 남다른 노력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같은 기간 일본어 연수를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회화와 청취 능력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말의 어순이 같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편 문법이 비슷하다는 점은 일본어 습득 시간을 단축시켜주며 그것을 실제 상황에서
 응용하는데 부담을 줄여줍니다. 즉 우리말의 문법과 대비해 가면서 익혀도 그렇게 큰 무리가 없으며 실생활에서 우리말에 대응하는 일본어 단어를 문법에 맞추어 대입할 수 있기에 응용도 금방  금방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일본은 현재도 한자를 일본글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어를 공부하는데 있어 한자 공부는 필수이며 고급단계로 갈수록 많은 한자를 익혀야 합니다. 우리말은 근래에 들어와 한자를 점점 쓰지 않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어 한국 생활에서 한자를 접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말들 중에는, 특히 명사의 경우, 대부분이 한자 음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어에 있어 어려운 단어들의 개념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일상에서 쓰고 볼 수 있는 한자들 중에는 일본식 약자들도 많기에 일본식 한자 학습도 그렇게 생소하지만은 않습니다.

이와같이 일본어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조금의 노력으로 쉽게 익힐 수 있는 외국어입니다. 그러나 일본어도 단순히 말하기뿐만 아니라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를 총체적으로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영어 못지 않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나아가서 언어란 단순한 표현 수단을 넘어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기에 고급 단계로 갈수록 일본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동반해야 하며 비슷하기에 정확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에 물들어 버리기 쉽다는 점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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