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 김연수
2009년 이상문학상 (제33회) 대상 수상작

주인공은 서로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녀와 헤어졌고 그녀가 죽어버린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이후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든 경험이 있다. 주인공은 소설이 시작되면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코끼리가 가슴을 짓누르려고 하는 환각 증세에 잠을 못 이룬다. 그는 그런 코끼리를 잊기 위해 무엇인가 열중하고 싶어 정말 읽으면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재미없는 책을 읽을 요령으로 서가에서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을 골라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그 책에서 말한 대로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무엇이든지 간에 짧은 시간에 척척 해치워버릴 수 있도록 걱정거리와 함께 산책을 할 친구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즉 산책의 목적은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 일들을 짧은 시간에 해결하면 불면의 고통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지네가 열 개의 다리를 잃고도 다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도망가는 것처럼, 베짱이가 다른 포식자에게 자신의 몸이 씹히는 와중에도 열심히 먹는 것처럼, 교미가 끝난 수컷 사마귀가 암컷에게 머리가 먹힌 뒤에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사랑을 하는 것처럼" 그도 그렇게 무엇인가에 열중하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날은 혼자 산책을 시도해보지만 불안감과 코끼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의 첫 번째 산책은 여동생과 함께였다. 그녀와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보지만 여전히 그의 고통의 상징인 코끼리는 산책하는 동안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고통이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은 대상화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마치 탁구공, 야구공, 핸드볼공, 축구공, 농구공, 럭비공, 애드벌룬, 지구와 같은 것처럼 생각하고 타인에게 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날 밤 그는 비교적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두 번째 산책 파트너는 금융감독원에 다니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는 산책하면서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고통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급습해 올지 모르는 공포감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각자의 고통은 타인에게는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설명을 해도 본인이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마치 주인공에게는 코끼리의 모습이지만 타인이 보는 그의 고통은 백혈구, 빛보다 빠른 입자로 아직 증명이 되지 않은 타키온과 같을 수 있고, 애널리스트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작금의 주식시장과도 같을 수도 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취해 친구의 품에서 사랑했던 그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녀, 그녀가 짊어지고 있던 고통을 결코 알 수 없었다는 자각에 그의 코끼리가 그를 마구 짓밟고 있는 것도 잊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러기처럼 통곡을 한다.


세 번째 그는 그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건축사와 함께 산책을 한다. 어린 시절같이 탁구를 치던 것을 회상하면서 친구의 스핀 걸린 공이 어디로 튈지 몰랐던 것처럼 자신의 코끼리가 가슴에 발을 얹은 채 언제 힘을 세게 줄지 모를 예측 불가능한 공포와 연결 짓는다. 뒤늦게나마 사랑했던 그녀에게도 뼈아픈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고통과 함께 그녀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네 번째 산책의 동행자는 그가 산책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책,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에 나오는 Y씨였다. 그녀는 폐암 선고를 받았으나 고비를 넘기고 장기 생존을 한 사람으로 오십대였다. 그녀는 암환자를 위한 고궁 산책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녀가 자신보다는 훨씬 심한 고통을 지녔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암 선고를 받은 후 줄곧 모든 것들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었고 그에 대한 답은 결국 혼자서 구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홀로 산책을 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걷기 시작하지만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는 생각에 이른다.


고궁 밖을 나왔을 때 거리는 소란스럽고 옛 애인과 꼭 붙어 다니던 그 길에는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가로막고 있었다. 주인공이 본 것은 사람들의 함성, 검은색 진압복, 살수차, 검은색 투구에서 2미터 정도 위쪽으로 지나가는 바람, 예축불가능한 극도 불안에서 오는 고통 그리고 경찰이 돌아가라고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니 "또한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그것을" 이라고 끝을 맺는다.
주인공은 Y씨가 고통을 극복해 낸 것처럼 산책을 하는 동안 나름대로 고통으로 상징되는 코끼리로 부터 벗어나고 있다. 비록 고통이라는 것은 객체화될 수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타인의 고통을 조금씩 생각하고 이해해 나가는 산책이라는 과정 속에서 본인의 고통을 조금씩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을 배워 나간다.

그는 소설 맨 마지막에서 그 자신과 그를 괴롭혀왔던 고통들과 함께 타인의 고통,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형상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예전 같으면 그곳에는 그의 고통의 상징이었던 코끼리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끝
hearstone
트랙백타고 넘어왔습니다. ^^
답글삭제방문 감사드리고요.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신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종 놀러와서 쉬다가 가겠습니다.
좋은 한 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종종들리겠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