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서점에 들렀었다. 무슨 상 받았다는 소설만 진열되어 있는 서가를 기웃거리다 이 책을 집어드는 순간 나는 피시시 웃고 말았다. 그건 작가의 이름이 살아오면서 별로 끈끈한 인연이 없는 두 인물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남파간첩 김신조, 다른 한 사람은 비슷한 이름의 어느 선배의 부인이었다. 어느 날 초대를 받아 식구들과 함께 그 선배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일인당 밥 한 그릇과 된장국 한 그릇 그리고 김치만이 나왔다. 그런데 그 국이 색깔만 된장 색이었지 맛은 맹물과 마찬가지였었다. 미안해 할까봐 다부지게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뚝딱했었다. 작가의 신상과 차례를 살펴 보려고 책 표지를 열자 아주 세련되고 시쳇말로 쿨한 젊은 여인이 작가로 소개되어 있었다. 음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그 여인의 생각을 훔쳐보고 싶다는 묘한 충동으로 책값을 지불했다. 한 석 달이 지났을까. 몇 일전 책장속에서 낯선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이신조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또 다시 김신조와 그 선배 부인의 된장국을 떠올리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후 난 다시금 차례를 살펴보아야 했다. 읽는 중 두 등장 인물의 삶과 상념들을 혼동하여 분간하지 않은 채 무심코 읽었던 것이었다. 차례와 그 내용을 매치시켜보니 윤자라는 한 중년 부인과 은해라는 젊은 여인의 이야기가 거의 쳅터별로 번갈아 나오고 있었다. 윤자는 결혼하여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지만 딸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후 살아가면서 많이 힘들어 하는 여인이다. 은해는 어릴 적의 불행한 가정 환경과 아픈 추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젊은 여자로 통신회사에 근무하면서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의 녹음을 파트타임으로 한다. 이 둘이 처음 대면하는 곳은 어느 큰 대형 백화점 안에 있는 수영장의 초급 수영반이다. 그 뒤로 백화점 등에서 조우하게 된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윤자의 삶이다. 평범한 가정 주부로 폐경기에 접어 든 그녀는 그녀의 딸이 부둣가에서 낯선 사내의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 윤자의 딸은 어느 유부남을 진심으로 사랑했었고 그와 함께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다 비행기 사고로 죽게된다. 그녀의 딸이 죽은 후 그녀는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보낸다. 또한 가족들에 대해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어떤 역할에 대한 의욕도 상실해 있다. 남편과 아들이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름지고 짠 음식을 만들며 그들이 먹든 안 먹든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귀가시간에 대해서도 항상 무덤덤하다. 약간의 도벽이 있으며 헬스클럽에서 수영을 등록하고 은해를 만나게 된다.
둘째 은해에 관한 이야기다. 은해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가씨이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방 윗목에서 밤새도록 조개를 깔 때 들리던 규칙적인 칼질 소리, 고무물통에서 그녀를 목욕시킬 때 등짝을 때리며 “이 더러운 것” 이라는 어머니의 외마디가 성인이 되어서도 귓전에 맴돈다. 외

양선원이었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올 때면 항시 가죽장갑을 끼고 그녀를 안아주곤 했었다. 중풍과 팔 골절로 몸져눕게 된 아버지를 문안하고 그녀는 그 낡은 가죽장갑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그 장갑으로 자신의 처녀막을 찢는다. 한편 그녀는 포르노 비디오 녹음을 파트타임으로 하면서 그녀는 섹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그에 대한 신선한 호기심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수영강사가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것을 마치 삼류 포르노 스토리와 같다고 생각하며 그 강사의 다음 행동을 미리 읽어내곤 한다. 드디어 모텔에서 그와 섹스를 하게 되지만 그녀는 어떤 교성도 내지 않으려고 참는다. 수영강사는 그런 그녀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티브 체널을 돌리다 우연히 은해의 목소리가 더빙된 포르노가 방영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볼륨을 크게 틀어 놓고 그녀를 강간한다.
셋째 윤자와 은해의 만남이다. 윤자와 은해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수영장에 등록하기 전까지는 서로 모르고 지냈다. 이들은 시간에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몇 마디 더 주고 받는 관계로 발전해 간다. 그들은 백화점이나 기타 장소에서 서로를 우연히 발견하면 미행하면서 지켜보곤 한다. 윤자는 은해가 수영강사와 만나는 걸 몇 번 목격하게 되고 은해는 윤자를 백화점에서 발견하면 그녀의 도벽을 지켜보기 위해서인지 미행하곤 한다. 사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진 않지만 윤자는 은해를 통해서 죽은 그녀의 딸을 연상하곤 한다. 은해는 모텔에서의 수영강사와의 사건이 있은 후 윤자를 백화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미행한다. 윤자가 수영장에 들어가고 자신도 따라 들어갔다가 윤자가 물속에서 우는 것을 목격한다. 은해는 물속에서 갑자기 하혈을 하게 되고 윤자가 그녀를 데리고 나와 씻겨준다. 벤치에 앉아 윤자는 은해에게 줄려고 늘 가지고 다니던 일전에 은해가 백화점에서 골라준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두 개를 건넨다.
우리는 무수히 지나치는 바쁜 낯선 사람들을 외모와 옷과 자동차 등으로 그 사람의 삶을 가늠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공상과도 같은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저마다 과거의 상처를 감싸쥐고 사는 외롭고 쓸쓸한 존재이다. 작가는 백화점이나 대형할인 매장을 활보하는 사람들 각자의 삶의 고독성을 잔잔한 필체와 관용화되지 않은 은유로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은해가 수영강사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은 인간 내면의 고독과 외면의 가식이 절정을 이룬다. 또한 윤자는 은해의 하혈을 씻겨 줄 때 죽은 딸의 첫 생리 때 해주고 싶었던 모성애를 재발견하는 그리고 은해는 어릴 적 고무물통속에서의 어머니에 대한 공포를 씻겨내는 느낌을 받았었것이다. 제목에서의 기댄다는 것은 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댄다는 것은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고독이라는 상처를 서로 햟아주는 행위일 것이다. 비록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관계가 아니더라 할지라도 서로를 감싸주는 따뜻함으로 바라봐 주기만하더라도 그나마 삶이 그렇게 무미건조하진 않을 것 같다.끝
hear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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