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4일 일요일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그림 속 액자

우리는 모두 액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위한 액자가 아니라

삶이라는

커다란 그림 속에서

보고 싶은 부분만 보기 위한 액자를

나의 삶을 돋보이게 하고 보호해주는 액자를

타인의 삶과 경계를 지어주는 액자를

그림 속 액자는 현재의 행복이기도 불행이기도 하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세상 사람들과 만난다. 이러한 프레임은 살아오면서 자연히 형성된 자기라는 존재의 정체성이다. 타인과 구분되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존재의 본질로서 존재하기 시작했고, 환경과 교육 그리고 무수한 인연들 속에서 바로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과 애착으로 굳어져 왔다. 따라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란 바로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애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란 다수의 프레임이 모여 만들어진 또 하나의 프레임이다. 비슷한 구조를 가진 프레임들끼리 모여 집단 프레임을 만들기고 하고 이질적 프레임들과 상충하기도 하면서 그 집단의 규모에 맞는 전체적인 틀을 형성한다. 마치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상대적 규모의 집단은 그렇게 그 나름의 프레임을 만들어 나간다.


프레임이란 항상 변할 수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정체성이란 항상 변화하는 흐름의 한 시점에서만 유효하다.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이 변할 수 있듯이, 10년 전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이 다르듯이 존재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애착은 언제나 변화를 꾀한다.


따라서 자신의 프레임에 대한 정의는 물론, 타인과 집단에 대한 것도 고정불변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오류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이다. 오해, 갈등, 증오, 분노, 고통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 등은 이러한 프레임의 본질적 속성을 납득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프레임은 다른 것과 구분을 지어주는 경계선이다. 따라서 프레임은 내가 가진 영역인 동시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계이다. 즉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한계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부정이라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에 보다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기에 스스로를 부정하기보다는 외부의 것을 본인에 맞게 편집하거나 일부만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져있다. 진정 자아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은 그 어떤 고통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지금의 자기를 없애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은 충격에 약하다. 특히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충격은 자아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때, 술을 마시고 화를 내고 싸우기도 하고 살인을 하기도 한다. 또한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심하면 정신분열증에 걸리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 때나 어떤 중대한 결심이 섰을 때 과감하리만큼 기존의 프레임을 속박이었다고 단정하고 너무나 쉽게 내던져 버리기도 한다.


프레임이 탈피해야할 대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현재 본인이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행복과 불행 역시 각자에게 그대로 돌아간다.



프레임을 형성하는 주체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것을 나라고 표현하고 우리라고 표현할 뿐이다. 그러나 나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또한 작금의 한국사회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등의 질문들에 모든 종교와 학문을 동원하여 안간임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시원한 대답을 듣기는 어렵다.

hearstone


댓글 2개:

  1. 영화에서도, 삶에서도 개개인의 틀에 대한 시각의 확보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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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화에 있어서도, 그래픽에 있어서도, 특히 창작자에게 있어서 더욱 더...그러나 가끔은 업무에 있어서는 본인의 독특한 관점을 포기하여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프로하면 억울해 하지 않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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